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의 시 ‘스며드는 것’을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집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 간장게장 속 꽃게 한 마리가 이토록 깊은 철학적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시인은 꽃게가 간장에 잠기며 겪는 마지막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움크립니다. 이 모습은 단순히 한 생명의 죽음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과 사랑, 그리고 받아들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모성애, 그리고 존재의 연민
꽃게가 마지막 순간까지 알을 품으려는 모습은 모성애의 본질을 상징합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합니다. 꽃게가 간장이 스며드는 고통 속에서도 알을 품으려 하는 모습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잇는 존재로서의 숭고함을 보여줍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라는 말처럼, 이 시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잊고 사는 존재의 연민과 사랑을 일깨워줍니다.
운명 앞의 체념과 받아들임
꽃게는 버둥거리다가 결국 어찌할 수 없어서, 간장이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마음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꽃게처럼, 우리도 때로는 저항하다가 결국 받아들임에서 평온을 찾게 됩니다. 삶의 어스름이 스며들 때, 우리는 받아들임을 통해 더 깊은 평온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 남기는 사랑
꽃게는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알들에게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고 말합니다. 이 일상적이고 다정한 인사는 죽음 앞에서도 자식에게 평온을 남기려는 마지막 사랑의 표현입니다. 죽음이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익숙한 시간으로 느껴지게 하는 힘. 이것이 바로 사랑의 위대함입니다. “사랑이란, 끝까지 남는 것이다”라는 격언처럼, 마지막까지 사랑을 남기는 존재의 모습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일상 속에서 스며드는 것들
이 시를 읽고 나면, 우리는 간장게장이라는 음식을 떠올리기보다는, 하나의 생명체가 겪는 마지막 순간과 그 안에 깃든 사랑, 체념, 그리고 평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쉽게 잊고 사는 ‘존재의 연민’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플라톤은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꽃게의 시선을 통해 이 평범한 진리를 우리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게 합니다.
우리 삶에 스며드는 것들
마지막으로, 이 시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나에게 이처럼 스며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삶에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 슬픔, 혹은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이 스며들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꽃게처럼, 끝까지 사랑을 품고 마지막 순간까지 평온을 전할 수 있을까요?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은 하찮아 보이는 존재도 마지막까지 사랑을 남긴다는 진실을 조용히 속삭입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체념, 그리고 평범함 속의 위대함. 이 시가 우리 마음에 스며들 때, 우리는 더 깊은 연민과 사랑, 그리고 존재에 대한 겸손을 배웁니다. 오늘 하루,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해보는 것도, 이 시가 우리에게 남긴 작은 실천일지 모릅니다.
“죽음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삶이 소중할 수 없는 것처럼, 스며드는 것들로 인해 인간의 사랑이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일상 속 사소한 것들이 우리 삶에 조용히 스며들며,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이 시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사랑과 연민, 그리고 받아들임의 지혜를 다시 한 번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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