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산문 / 한겨레출판
p.244. '저급한 이야기꾼들의 신' 中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나오는 "나는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기 위해 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보지만, 신이 더 신다워지기 위해 인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학의 임무 중 하나는 바로 이 저급한 이야기꾼들의 서사와 싸우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일본 대지진 당시 일부 지도자와 종교인의 발언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등장한다. 실제로 한 도지사는 "한반도를 이렇게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고, 한 대형교회 목사는 "일본의 재난이 신의 경고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안전이나 신앙, 이익과 연결지으며, 신의 이름을 빌려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가 인간의 본성을 저급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신을 통해 인간이 한계를 성찰하고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려는 노력은 의미 있지만, 신의 뜻을 자기 이익에 맞게 해석해 타인의 고통을 정당화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문학의 역할은 바로 이런 왜곡된 서사, 즉 신을 이용해 인간의 이익을 합리화하거나 타인의 슬픔을 도구화하는 이야기와 싸우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문학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슬퍼하고, 그 슬픔을 통해 타인에게 다가가려는 연민의 태도를 촉진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종교나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통제하고, 죄책감을 조장하며, 불안을 이용해 착취하는 사례는 여전히 존재한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노골적이었다면, 지금은 더 은밀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신형철의 글은 이런 현실에서 문학과 작가의 역할, 즉 타인의 슬픔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삼지 않고, 그 슬픔을 공부하고 연민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연민과 자기성찰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이와 같은 주제는 철학적으로도 깊이 논의될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데카르트의 대화로 풀어보는 시리즈 13)

아퀴나스(1,225년출생): 인간은 신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신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지요.
신앙은 이성보다 우월하며, 인간은 신의 은총을 통해 완성됩니다.
데카르트(1,596년출생): 흥미롭군요.
저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가운데서도,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이 인간 안에 있다는 점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은 인간의 이성적 탐구를 통해 접근 가능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신이 준 선물이며, 우리는 이성을 통해 도덕과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퀴나스: 맞습니다,
이성은 신이 주신 선물이지만, 이성만으로는 신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신앙이 이성을 완성하지요. 다만,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신은 완전한 존재이기에 인간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완전합니다.
데카르트: 동의합니다.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요.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이성적·도덕적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진정한 이성적 태도가 아닙니다.
아퀴나스: 문학이 저급한 이야기꾼들의 서사와 싸운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문학은 인간의 내면, 슬픔, 연민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듭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갖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데카르트: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성찰과 타인에 대한 연민, 그리고 이성적 탐구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배제하거나 고통을 정당화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입니다.
아퀴나스: 그렇습니다.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기 위해 신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신이 더 신다워지기 위해 인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역할은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성찰하고 타인의 슬픔을 공부하는 데 있습니다.
이처럼 신형철의 문장은 인간의 연민과 자기성찰, 그리고 문학의 역할을 강조하며, 종교와 신앙이 타인의 고통을 도구화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구한다.
아퀴나스와 데카르트의 대화를 통해, 신과 인간, 이성과 신앙, 그리고 문학의 임무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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