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필로소피 랩' VI. 문학과 언어. P.176-177. 촘스키 '언어 습득' 中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도입부: 비트겐슈타인과 촘스키의 언어에 대한 대화 (상상대화시리즈 43)

비트겐슈타인:
“노엄,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 정말 신비하지 않나? 내 생각엔 언어는 일종의 ‘게임’이야. 단어와 문장, 규칙을 조합해서 상대방과 소통하지만, 그 규칙이 곧 언어의 본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해.”
촘스키:
“루드비히, 네 말에 공감해.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방식은 단순한 규칙 학습을 넘어선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심지어 아무런 공식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복잡한 언어 규칙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뇌에는 언어를 위한 ‘내장된 프로그램’이 있다고 생각하게 돼.”
비트겐슈타인:
“그렇다면, 언어는 사회적 맥락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날 때부터 준비되어 있다는 건가?”
촘스키:
“맞아! 인간은 누구나 ‘보편 문법’이라는 언어의 기초 구조를 타고나. 이 덕분에 어떤 언어 환경에 놓이더라도 빠르게 그 언어를 습득할 수 있어. 사회적 맥락도 중요하지만, 그 기초에는 인간 고유의 생득적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이 능력이 바로 ‘언어 습득 장치(LAD)’야.”
비트겐슈타인:
“흥미로운 주장이야. 그렇다면,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뇌가 얼마나 유연한지를 더 깊이 이해해야겠네.”
본론: 인간 뇌의 신비와 언어 습득의 마법
인간 아기는 동물계에서 볼 때 몹시 무능해 보인다. 새끼 바다거북은 태어나자마자 바다로 파닥파닥 기어가고, 망아지는 몇 시간 만에 빠르게 걷기 시작하며, 새는 알에서 나온 지 며칠 만에 날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 아기는 심지어 자기 머리도 가누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아기에게는 그 어떤 동물보다 뛰어난 영역이 존재한다. 바로 ‘뇌’다.
이 뇌 덕분에 인간은 ‘언어’라는 마법을 손에 넣게 된다. 촘스키는 바로 이 점에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언어는 정말로 복잡하다. 추상적 개념, 시제, 인칭, 수, 문장 구조, 문법까지, 수많은 규칙이 얽혀 있다. 그런데 유아는 이런 규칙을 모두 구별할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재현할 줄 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만 5세까지의 유아는 정식 문법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 해당 언어에 부분적으로만 노출되었더라도,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문장을 해석하고 말할 수 있다. 이 나이대의 유아는 공도 제대로 잡지 못하지만, 완전히 다른 언어 여러 개를 쉽게 익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배운 적이 거의 없더라도 유아는 다른 발달 단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인지 능력을 보인다.
인간 뇌의 언어 습득 구조
언어 습득의 핵심은 뇌의 구조와 기능에 있다. 언어를 담당하는 대뇌피질은 주로 좌측 측두엽에 위치하며, 좌측 전두엽과 측두엽에 위치한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이 각각 말하기와 언어 이해를 담당한다. 특히 유아기는 이 영역이 급속히 발달하는 시기로, 생후 18~24개월부터 2~4세까지가 언어 발달의 결정적 시기로 여겨진다.
유아기는 거울 신경세포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거울 신경세포는 엄마 아빠의 말과 행동을 모방하며, 이를 통해 언어와 사회성을 동시에 익힌다. 이 과정은 마치 거울을 보면서 행동을 익히는 놀이처럼 보인다. 거울 신경세포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역할을 하기 시작하며, 유아기에는 특히 활발히 활동한다.
촘스키의 ‘언어 습득 장치(LAD)’와 보편 문법
촘스키는 인간의 뇌에 ‘언어 습득 장치(Language Acquisition Device, LAD)’라는 선천적 구조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장치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는 요소로, 언어를 위한 ‘내장된 청사진’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최소한의 명시적 교육만으로도 문장을 구성하고, 문법 구조를 익히며,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모방이나 반복을 넘어서는 것이다.
촘스키의 이론에서 ‘보편 문법(Universal Grammar, UG)’은 모든 인간 언어가 공통의 구조적 기반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세계 언어 간에 명백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언어가 일련의 기본 원칙을 따른다는 가정이다. 보편 문법은 언어의 표면 구조(특정 언어의 구문 규칙)와 심층 구조(모든 언어에 공통된 근본 규칙)로 나누어 설명된다. 심층 구조가 표면 구조로 변환됨으로써 다양한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할 수 있다.
뇌의 가소성과 언어 학습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연구에 따르면, 뇌는 내·외부 자극에 따라 신경망이 계속 변화한다. 특히 언어를 배울 때마다 관련 신경망이 새롭게 형성되고 강화된다. 유아기에는 이 가소성이 극대화되어, 여러 언어를 동시에 습득하는 데 유리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뇌의 신경망은 변화할 수 있지만, 유아기만큼 유연하지는 않다.
결정적 시기(만 2세~사춘기)에는 뇌의 유연성이 매우 높아 언어 습득이 빠르고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성인은 일정 수준의 언어를 익히는 데 수년이 걸리는 반면, 다섯 살 밖에 안 된 유아는 매우 복잡한 여러 개의 언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도 있다.
결론: 모두를 위한 평등한 언어 교육
언어 습득 능력은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 되었다. 영어유치원이 생기고, 많은 부모들이 5살도 안 된 아이들을 이곳에 보내는 것도 촘스키의 사상이 증명되었다는 신념 때문이다. 평범한 유치원보다 5배 이상 높은 학비도 아깝지 않게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려는 부모의 열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는 영어유치원 같은 사설 교육이 아니라, 국가가 이런 시설을 무료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층의 자녀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이 평등한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열린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교육의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린이를 만나거든 새로운 경의(그리고 질투)를 담은 눈으로 바라봐주자.
어린이들이 작아 보일지 몰라도, 실은 놀라운 언어 마법사다.
촘스키의 사상과 뇌 과학의 발견은 우리에게 언어의 신비와 인간 뇌의 잠재력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참고할 글)
https://bike7676.tistory.com/entry/%EC%82%AC%EB%9E%8C%EC%9D%84-%EB%A7%8C%EB%82%98%EB%8A%94-%EA%B2%83%EC%9D%80-%ED%95%9C-%EC%84%B8%EA%B3%84%EB%A5%BC-%EB%A7%8C%EB%82%98%EB%8A%94-%EA%B2%83%EC%9D%B4%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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