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소피 랩' p.76-77. (예술) 아리스토텔레스
'스트레스 해소하기' 부분을 읽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감정의 균형을 논하다
―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포크라테스의 상상 속 대화시리즈 34

아테네의 한 정원, 두 현자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눈다.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나는 늘 인간의 건강이란 몸속 네 가지 체액의 균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네. 피와 점액, 황담즙, 흑담즙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병이 멀어진다고 말이지.”
아리스토텔레스:
“그대의 말이 옳소, 히포크라테스. 그런데 나는 생각하네. 몸만큼이나 우리 영혼에도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오. 인간의 마음속에도 다양한 감정이 흐르지 않던가? 슬픔, 두려움, 분노, 기쁨… 이 감정들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영혼 역시 병들게 되는 법이오.”
히포크라테스:
“그렇다면, 영혼의 균형은 어떻게 맞출 수 있지? 약이나 식이요법으로는 부족할 텐데.”
아리스토텔레스:
“바로 예술이 그 역할을 한다네. 특히 비극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억눌린 감정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지. 나는 이것을 ‘카타르시스’라고 부르오. 마치 그대가 체액의 불균형을 치료하듯, 나는 예술로 감정의 불균형을 다스리려 하는 것이오.”
히포크라테스:
“과연, 몸과 마음 모두 균형이 중요하군. 자네의 생각이 실로 흥미롭네.”
인간은 왜 슬픈 영화와 공포영화를 사랑할까?
―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로 읽는 감정의 정화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두려움과 슬픔을 싫어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슬픈 영화에 눈물을 흘리고, 공포영화에 소름 돋는 경험을 반복합니다.
왜 인간은 불쾌한 감정을 자발적으로 경험하려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리스토텔레스는 2,400년 전 이미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무엇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목적을 “두려움과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이 감정들을 정화(카타르시스)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히포크라테스가 신체의 건강을 체액의 균형에서 찾았듯,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의 건강을 감정의 균형에서 찾은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으로 치면 ‘감정의 해소’ 혹은 ‘감정적 환기’에 해당합니다.
억눌린 감정이 예술작품을 통해 안전하게 분출될 때, 우리는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에서 카타르시스를 자주 경험합니다.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울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운동이나 노래방에서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이런 행동들은 모두 감정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본능적인 시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모방이다”라고 했습니다.
현실에서 직접 겪기엔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우리는 예술을 통해 ‘간접 경험’하며 해소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비극 공연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습니다.
시민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공공복지’의 일환이었죠.
연극을 무료로, 때로는 돈을 주며 관람하게 했던 이유는 바로 카타르시스의 의료적 효과 때문이었습니다.
현실에서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대신, 무대 위에서 그 감정을 경험하고 정화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건강에 이롭다는 지혜였던 것입니다.
현대인의 삶은 고대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중용(中庸)”의 지혜처럼, 감정 역시 지나치게 억누르거나 방치하지 말고, 적절히 해소하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슬픈 영화, 감동적인 드라마, 스릴 넘치는 공포물, 이 모든 문화생활은 단순한 오락이 아닙니다.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분출하고,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 ‘감정의 환기’이자 ‘정신의 건강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영혼의 활동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억눌린 감정이 쌓였다면, 그것은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오늘, 한 편의 영화나 연극, 음악, 책을 통해 마음의 균형을 되찾아 보세요.
“예술의 목적은 쾌락이 아니라, 영혼의 정화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입니다.
결론적으로, 감정의 균형을 되찾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있어 예술과 문화생활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카타르시스는 고대에도, 그리고 현대에도 여전히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정신의 치유법입니다.
답답함과 불안이 밀려올 때, 예술을 통해 감정의 김을 빼고, 다시 삶의 균형을 찾아보세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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