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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판단 보류

by 독사가 2025. 6. 30.

도서 '필로소피 랩' p.248-249 피론 '판단보류' 를 읽고 정리하였습니다.

 

도입부: 피론과 플라톤, 지금 이곳에서 만나다

(상상 대화 시리즈59)

피론 & 플라톤의 대화
피론 & 플라톤의 대화

어느 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론과 플라톤이 대한민국의 한 토론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마주쳤다고 상상해봅니다.

 

 사회자가 묻습니다.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이 옳습니까? 그리고 진실은 무엇입니까?”


플라톤이 먼저 입을 엽니다.
“진실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바람이 어떤 이에게는 따뜻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차갑게 느껴지듯이 말이죠.”

 

피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우리는 결코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판단을 잠시 미루는 것이 지혜롭지 않겠습니까?”

 

두 철학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논쟁과 혼란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본론: 피론의 회의론과 ‘판단 보류’의 지혜

 

현실 세계에서 명확하고 완벽한 해답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특히 정치, 사회, 윤리와 같은 복잡한 문제에선 양측 모두 충분히 타당한 논리를 펼칠 수 있죠. 우리는 종종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진보와 보수의 의원들이 각자의 논리를 굽히지 않고 기계적으로 반론하는 모습을 접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실망하고, 때로는 혐오까지 느끼게 됩니다.

 

이럴 때, 피론의 회의론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피론은 “아무것도 확신하지 마라”라는 명쾌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명백한 진실이 없을 때, 우리는 ‘판단을 보류(에포케, epoché)’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답이 없음을 인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답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플라톤 또한 “우리가 인식과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은 판단일 뿐, 진리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피론의 회의론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줍니다.

  • 모순되는 주장에 똑같이 설득력 있는 논거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쪽에서는 복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제성장이 우선이라고 주장합니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지만, 어느 한 쪽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좌절이나 무기력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 겸손과 열린 마음의 표현이다.
    “잘 모르겠네요. 계속 알아볼게요.”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 에포케(판단 보류)를 통해 아타락시아(방해받지 않는 고요함)에 이를 수 있다.
    답이 없음을 받아들이면, 좌절이나 실망, 불필요한 논쟁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피론은 이렇게도 물었습니다.
“쾌락이 왜 고통보다 나을까요?”,
“부가 가난보다 나은 이유는 뭘까요?”,
“건강이 질병보다 나은 이유는요?”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조차도 절대적인 답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마무리: 대한민국 정치와 ‘판단 보류’의 필요성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보면, 각자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상대방의 논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런 태도는 생산적인 토론을 방해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만듭니다.

 

피론이 오늘날 국회의원들에게 조언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겸손함을 가지십시오.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자신의 판단을 잠시 보류하고, 상대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보십시오. 그렇게 할 때, 더 깊이 있는 토론과 더 나은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다면, 사회는 훨씬 더 건강하고, 열린 대화를 나누는 곳이 될 것입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피론의 ‘판단 보류’의 지혜를 실천한다면, 더 풍요롭고 온전한 삶,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 토론에서 잘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하고, 상대를 가르치려 하지말고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의견을 잘 청취하는 그런 토론장을 볼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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