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릭와이너 지음/ 어크로스) 를 읽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에피쿠로스는 흔히 ‘쾌락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쾌락, 즉 성적 쾌락이나 식욕 등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즐거움과는 그의 철학이 분명히 다릅니다. 오히려 그는 현대적 의미의 ‘향락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평정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의 본질과 그가 추구한 행복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그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에게 쾌락은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이 아닙니다. 그는 쾌락을 ‘고통과 불안이 없는 상태’로 정의했습니다.
즉, 쾌락이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핍이나 불안, 고통이 없는 상태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에피쿠로스는 두 가지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바로 마음의 평정, 즉 정신적 불안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아타락시아(Ataraxia)’와, 육체적 고통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아포니아(Aponia)’입니다. 그는 이 두 가지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쾌락이며, 행복한 삶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하되, 모든 쾌락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욕망을 절제하고, 소박한 삶을 통해 불필요한 고통과 불안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쾌락의 공식은 ‘쾌락 = 성취/욕망’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그는 성취를 늘리기보다는 욕망을 줄임으로써 쾌락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즉, 더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는, 욕망을 최소화하여 지금의 상태에서 만족과 평온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았을까요? 고대 그리스 사회와 이후 서양 철학자들은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방탕’이나 ‘육체적 쾌락’과 동일시하며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실제로 주장한 쾌락의 의미를 오해한 결과입니다. 에피쿠로스는 오히려 감각적 쾌락이나 일시적 즐거움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평온함과 만족, 그리고 불필요한 욕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난 자유를 추구했습니다. 그는 “쾌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쾌락이 아니었고, 불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쾌락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름진 음식이나 성적인 대상은 순간적으로 쾌락을 주지만, 인간 자체를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고된 운동은 순간적으로 불쾌하지만 더 큰 쾌락을 느끼게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한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쾌락을 위해서는 친구와의 우정, 올바른 지식, 죽음과 신에 대한 두려움 극복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작은 공동체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며, 명예나 부, 권력 대신 내면의 평온을 추구하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결국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흔히 오해되는 감각적 향락주의가 아닙니다.
그는 고통과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 즉 ‘아타락시아’와 ‘아포니아’를 통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절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며, 내면의 평정과 자유를 추구한 철학자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를 ‘향락주의자’가 아닌, ‘평정의 철학자’로 다시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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